황목근 씨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에 있는 500년이 넘은 오래된 팽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단순한 노거수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땅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며 그 수익으로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주는 특별한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40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황목근은 역사적,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199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비록 나무 밑동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등 세월의 흔적이 뚜렷하지만, 주민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름과 유래
황목근은 팽나무로, 매년 5월이면 노란색 꽃을 피운다고 해서 '황(黃)'이라는 성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뿌리가 있는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얻어 황목근(黃木根)이 되었습니다.
땅을 소유한 나무:
마을 주민들은 1903년부터 '금원계안'을 조직해 공동 재산을 모았고, 1939년 이 땅의 소유권을 황목근 앞으로 등기 이전했습니다. 당시에는 사물 명의의 등기가 가능했기 때문에, 황목근은 사람처럼 땅을 소유한 ‘땅 부자 나무’가 되었습니다. 현재 황목근이 소유한 토지는 1만 2,231㎡(약 3,700평)에 이릅니다.
세금 납부와 장학금:
황목근은 이 땅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바탕으로 매년 꼬박꼬박 재산세(토지세)를 납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무가 직접 세금을 낼 수는 없기에, 마을 주민들이 황목근을 대신해 이 의무를 수행합니다. 또한, 남은 수익금은 마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되어 '세금 내고 장학금도 주는 나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수호신:
황목근은 단순히 세금을 내고 장학금을 주는 나무를 넘어, 금남리 금원마을 사람들에게는 오랜 세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수호목이자 당산나무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공동체의 상징:
황목근은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상징합니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황목근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고, 그 다음날 잔치를 벌이며 화합을 다집니다. 이처럼 나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함께하는 모습은 공동체의 따뜻한 문화를 보여줍니다.
황목근의 탄생비화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과 위기
일제는 1910년대부터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며 조선의 토지 소유관계를 근대적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 소유로 명확하게 등록되지 않은 토지, 특히 마을 공동체 소유의 땅이나 산림은 국유지로 편입되거나 일본인에게 헐값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천 금원마을 주민들은 수백 년간 마을의 신목(神木)으로 모셔온 팽나무(황목근)가 서 있는 땅이 자칫 일본인 소유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마을 공동체인 '금원계'가 관리하고 있었지만, 일제의 새로운 법 체계 속에서 소유권을 확실하게 보장받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기지와 선견지명
이에 마을 주민들은 놀라운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당시 일제강점기의 법제도 하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단체 명의로도 재산의 소유권 등기가 가능한 특수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1939년, 마을 주민들은 이 법적 허점을 이용하여 공동 재산인 땅을 황목근의 이름으로 등기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소유권 등기: 주민들은 나무에 '황목근'이라는 이름을 붙여 인격을 부여하고, 이 나무의 이름으로 등기소에 정식으로 소유권 등기를 마쳤습니다.
세금 납부 의무: 이로써 황목근은 법적으로 땅을 소유한 '땅 부자 나무'가 되었고, 동시에 소유주로서의 의무인 세금 납부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마을의 상징이자 수호신인 황목근을 지키고, 마을의 공동 재산을 보존하려는 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행동이었습니다.
황목근이 토지 소유권을 얻은 것은 단순히 법적인 절차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마을 공동체가 자신들의 뿌리와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저항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지닌 살아있는 유산
1. 이름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
'황목근(黃木根)'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팽나무의 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1939년,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마을 공동 재산의 소유주로 등기하면서 특별히 지어준 이름입니다.
황(黃): 이 나무가 5월에 노란 꽃을 피운다고 하여 붙여진 성(姓)입니다.
목근(木根): 나무뿌리라는 뜻으로, 마을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나무에게 성과 이름을 지어주고 인격화하여 소유권을 인정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고 특별한 경우입니다.
2. '세금 내는 나무'를 넘어선 역할
황목근이 '세금 내는 나무'로 유명한 것은, 소유한 토지(2,821평)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매년 종합토지세를 꼬박꼬박 납부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소득은 단순히 세금 납부에 그치지 않고, 마을 공동체를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장학금 지급: 황목근의 수입은 마을 출신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되어 인재 양성에 기여했습니다.
마을 공동 재산 관리의 상징: 1903년 '금안계안회의록'과 1925년 '저축구조계' 임원록 등의 기록은 마을 사람들이 100여 년 전부터 쌀을 모아 공동 재산을 형성하고, 이를 당산제에 사용하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음을 보여줍니다. 황목근은 이러한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중심 역할을 해온 것입니다.
3. 풍수지리와 마을 공동체 의식의 결합
황목근은 금원마을의 넓은 들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부족한 기운을 보완하고 바람을 막아주는 비보림 또는 방풍림의 역할을 하도록 심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을 수호신: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주민들의 정신적 의지처이자 수호신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공동체 화합의 장: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황목근 아래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다음 날에는 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 화합을 다지는 잔치를 벌입니다. 7월 백중날에도 잔치를 열어 농사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나무를 보살피며 공동체 의식을 강화합니다.
4. 황목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치
황목근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에 대한 기록을 넘어, 우리가 배워야 할 여러 가지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존중과 인격화: 나무를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성(姓)을 가진 인격체로 대하고 소유권을 부여한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깊은 철학을 보여줍니다.
공동체 정신의 복원: 마을의 공동 재산을 한데 모으고, 이를 마을의 안녕과 후대 교육을 위해 사용했던 황목근의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는 공동체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지속 가능한 유산 관리: 황목근은 단순히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유산입니다. 이는 유산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는 바람직한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목근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특별한 존재를 넘어,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전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