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올해, 350년의 장벽을 넘어 드디어 여성이 영국 왕실천문관에 새로운 이름을 올렸습니다. 영국의 왕실천문관(Astronomer Royal) 직책은 그 이름만으로도 천문학 분야의 가장 영예로운 자리를 상징합니다. 1675년, 해양 국가였던 영국의 항해술 발전을 위해 찰스 2세 국왕이 그리니치 왕립 관측소(그리니치 천문대)를 설립하며 신설한 이래, 이 자리는 단 15명의 저명한 학자들만이 거쳐 간 최고의 명예직입니다. 천왕성을 처음 관측한 존 플램스티드, 핼리 혜성의 주기를 예측한 에드먼드 핼리 등 인류 천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의 이름이 이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350년 동안 남성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이 역사적인 자리에 마침내 새로운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바로 행성 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미셸 도허티(Michele Dougherty) 교수가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왕실천문관으로 임명된 것입니다.

☆ 행성 과학의 선구자, 미셸 도허티 교수는 누구인가
미셸 도허티 교수는 350년의 긴 역사 속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왕실천문관에 오른 최초의 여성입니다. 그의 임명은 단순히 성별의 장벽을 넘어선 것을 넘어, 도허티 교수가 쌓아 올린 독보적인 연구 업적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카시니-하위헌스 호와 주노 미션의 핵심 주역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행성 과학자이자 물리학과 학과장인 미셸 도허티 교수는 태양계 탐사 미션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NASA의 카시니-하위헌스 호(Cassini-Huygens) 미션에 참여하여 토성 탐사에 기여한 것입니다. 카시니-하위헌스 호는 토성과 그 위성들에 대한 전례 없는 데이터를 수집했으며, 도허티 교수는 이 미션의 자기장 측정 장비를 설계하고 데이터 분석을 주도했습니다.
예시) 도허티 교수는 카시니-하위헌스 호를 통해 토성의 자기장과 위성들의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토성의 자기권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토성 고리의 복잡한 구조와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기둥의 존재를 규명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주노(Juno) 미션에 참여하여 목성의 자기장과 중력장 연구를 이끌며 거대 가스 행성의 내부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이미 영국 물리학회의 최고 상인 캐플러 메달을 수상하며 그 업적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 영국 천문학의 심장, 왕실 천문관 350년의 역사와 명예
그 기원은 17세기, 대항해시대의 절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해상 무역과 군사력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으며, 안전하고 정확한 항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먼바다에서 배의 위치, 특히 경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당시의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경도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
해상에서 경도(longitude)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관측 지점과 기준 지점(예: 런던)의 현지 시각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높이 떴을 때가 정오인데, 이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별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한 정밀한 천체 지도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천체 지도는 부정확하여 잦은 사고와 인명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1675년, 영국의 찰스 2세 국왕은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그는 "정확한 항해술을 위해 하늘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별들의 위치를 정밀하게 기록할 수 있는 천문학자를 임명하라"라고 명령하며, 이를 위해 그리니치 왕립 관측소
(그리니치 천문대)를 설립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탄생한 직책이 바로 왕실 천문관입니다.
위대한 천문학자들이 걸어온 길
왕실 천문관은 1675년 이래 지금까지 단 15명의 학자들만이 그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천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인류 문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위대한 학자들입니다.
*초대 왕실 천문관, 존 플램스티드의 고독한 임무
왕실 천문관의 초대 임무는 존 플램스티드(John Flamsteed)에게 주어졌습니다. 찰스 2세는 그에게 "하늘의 별들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항해에 필요한 천체 목록을 만들라"는 막중한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국왕은 그에게 관측소 건물만 지어주고 별도의 장비나 보수를 거의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플램스티드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가며 40여 년에 걸쳐 무려 3,000개에 달하는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관측하고 기록하는 고독한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후대 학자들이 천문학 연구의 기초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핼리 혜성을 예언한 에드먼드 핼리와 후계자들
플램스티드의 뒤를 이어 2대 왕실 천문관에 오른 학자는 바로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입니다. 그는 혜성의 궤도를 계산하여 혜성이 주기적으로 지구에 돌아온다는 사실을 예측했고, 이는 핼리 혜성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게 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네빌 마스켈린(Nevil Maskelyne)은 정확한 항해용 천문력(Nautical Almanac)을 발행하며 항해술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고, 조지 에어리(George Airy)는 그리니치 표준시(GMT)를 확립하며 전 세계 시간의 기준을 세우는 데 공헌했습니다. 이처럼 왕실 천문관은 단순한 연구를 넘어 실용적인 분야에 천문학적 지식을 적용하며 인류의 삶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현대 왕실 천문관의 새로운 역할과 임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 기술이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왕실 천문관의 역할 또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1972년을 기점으로 그리니치 천문대가 더 이상 왕실 천문관의 주된 근무지가 아니게 되면서, 이 직책은 실무직에서 천문학 분야의 최고 영예를 상징하는 명예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지구촌을 위한 '천문학 외교관'
오늘날의 왕실 천문관은 과학계의 공식적인 조언자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천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천문학 외교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들은 영국 국왕에게 천문학 관련 사안들을 보고하고, 정부 자문 위원회에 참여하며, 공공 강연이나 미디어 출연 등을 통해 천문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힘씁니다. 왕실 천문관이라는 권위 있는 직책은 그 자체로 천문학에 대한 대중의 존경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350년 만의 새로운 역사, 그리고 미래
도허티 교수의 이번 임명은 영국 과학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도허티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린아이들의 경우 자신과 닮은 사람이 자신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임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미셸 도허티 교수는 앞으로 과학계와 정부, 그리고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행성 과학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영국의 우주 과학 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 그의 혁신적인 연구와 함께, 최초의 여성 왕실천문관으로서 미래 세대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는 영국 천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